영화 감상
[스플라이스] 누구의 욕심이 만들어낸 비극인가?
ksge7
2010. 7. 5. 07:00
※ 이 글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
실력있는 과학자 '클라이브(에드리언 브로디)'와 '엘사(사라 폴리)'는 DNA합성을 통해 인류에 기여할 단백질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치료용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조류, 어류, 파충류 등 다종의 DNA를 합성시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게 되고,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호기심과 더 나은 생명체를 만들려는 욕심으로 그 둘은 새로운 생명체에 인간의 DNA를 조합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결국 오랜 실험 끝에 그들은 인간 유전자 조합에 성공하게 되고, '드렌'이라는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완전한 인간이 아닌 '드렌'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사건이 터지기 시작하는데...
감상:
21세기로 들어서며, 가속화된 생명 공학 분야의 발달로 인간은 자신들을 복제해내는 즉, 인간 복제의 영역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인간의 윤리적인 영역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어떤특정 목적을 위해 인간을 복제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또는 장기 복제를 위해 태어난 생명체를 인간으로 규정해야하는지까지. 수 만 년에 달하는 인간의 역사에서 유례없던 일로 인해 인류는 여러 문제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난 처음 <스플라이스>의 예고를 보고, 이 영화가 <스피시즈>와 비슷한 영화인줄 알았다. 새로운 미지의 존재가 인간을 위협한다는 스토리 라인때문이었다. 아마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런 착각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앞서 말한 윤리와 과학 그리고 인간의 욕심에 관한 영화였다. 영화 속 사건의 발단은 모두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된다. '드렌'은 철저히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다. '드렌'이 어떻게 살아가든 상관없이, 그 생명체는 인간들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재료로써 그리고 '엘사'의 아기 대용으로 만들어진 애완동물같은 존재였다. 애초에 인간의 DNA를 썼지만 인간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드렌'은 비록 완전한 인간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인간의 DNA와 마음을 모두 가진 존재였다. '드렌'은 점차 커가면서 인간과 같은 고민과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는 '드렌'은 그 모든 것을 구속받고 제한받아야만 했다. 결국 '드렌'은 사춘기 소녀처럼 인간들에게 반항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엘사'의 분노와 차별, 그리고 무책임 속에 고통을 받아야했다.
'드렌'이 이런 고통을 받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드렌'이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 행세를 하려던 것 때문도 아니고, 인간에게 반항을 해서도 아니다. 바로 책임 지지 못할 인간의 욕심이 그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클라이브'가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그것 때문에 혼란이 온 것이라고 말이다.
아마도 이 대사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겐 인간이 신이 정해놓은 범위를 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과학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볼 때 이들이 넘었다는 선은 신의 영역도 아니고, 과학의 컨트롤 범위도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가 책임 질 수 있는 욕심의 범위를 넘어선 것을 이야기 한 것 같다. 간혹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고나서, 오히려 삶이 불행해졌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내가 볼 때 <스플라이스>의 두 주인공도 이런 상황이었다.
그 둘에게 '드렌'은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성과를 내야한다는 공적인 부분의 욕심과 사적인 부분의 욕심으로, '드렌'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의 모든 문제와 비극적인 사건들은 '드렌'이 정상적 인간이 아니기에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엘사'와 '클라이브'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드렌'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이 충분한 고민과 능력을 갖추고 나서 '드렌'을 만들었다면, 영화 속 비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과학도 그런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과학계의 입장을 옹호하는 편이라 단순히 종교적인 규범이나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과학이 제한 받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과학적 기술이 신의 영역을 넘든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부분을 건드리든 간에 충분한 책임질 능력이 없이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건, 과학의 원 목적과 달리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고 만들고 비극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사실 난 처음에 <스플라이스>를 돌연변이 인간의 지구 침공 영화 정도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주연 배우가 '에드리언 브로디'라는 사실에 대해 살짝 놀랐다. 나에게 그는 <피아니스트>, <빵과 장미>로 대변되는, 어떠한 메시지 있는 영화에만 나오는 배우로 인식되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필모그래피로 볼 때 꼭 그런 영화만 있는건 아니다.)
어찌됐든 그러한 약간의 의구심 속에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데, 오프닝에서 영화의 프로듀서로 '길예르모 델 토로'가 참가한 사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 순간 이 영화가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영화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답게 <스플라이스>는 인간의 욕망, 과학적 윤리 등 관객들에게 많은 문제 제기를 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범상치 않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영화 후반부 '드렌'이 수컷으로 변하는 부분에서였다. 적어도 우리는 '드렌'이 암컷일때는, 인간에게 반항하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어도 오히려 동정심을 느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드렌'이 수컷으로 변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비록 영화 속에선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드렌'은 사람들을 죽이고 혐오스러운 존재처럼 비춰진다. 결국 '드렌'을 죽이기 위한 정당성을 갖기위해, 감독은 '드렌'을 암컷에서 수컷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물론 영화의 결말을 짓기 위해서 감독으로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드렌'이란 존재를 죽여야 영화가 끝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불쌍하고 가여운 역할을 맡던 '드렌'을 그대로 죽일 순 없던 것이다. 그래서 '드랜'을 죽이기 위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 성의 전환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이 성전환으로 인해, '드렌'은 인정받지 못하는 불쌍한 생명체에서 순식간에 단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분명 '드렌'이 수컷으로 변해서 사람들을 죽이긴했으나, 그건 결국 인간의 욕심과 과오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시작은 인간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드렌'의 변신은 그 책임 소재를 고스란히 '드렌'에게 돌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감독이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난 이런 결말이 굉장히 아쉽게 느껴졌다.
확실히 여러가지 면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고,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난다면 정말 이렇지 않을까 할 정도로 아주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 영화였다. 다만 결말 부분이 좀 많이 아쉬운 점은 이 영화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면 굉장히 속이 거북한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일부 어떤 이들은 이런 장면들을 보고 단지 기분이 나쁘다고, 그 장면들을 단순히 관객에게 역겹고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분명 그런 충격적인 장면들은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 충격적인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인간의 욕심이 가져오는 비극에 대해 경고하고 그것을 오랫동안 머리 속에 남기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