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작은 연못] 꿈같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ksge7 2010. 4. 25. 04:04



줄거리:

1950년대 초 한국 전쟁 중인 충청도 산골. 대문바위골 사람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도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이 들이닥쳐 대피령을 내리고 마을 사람들은 남쪽을 향해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피난길에 오른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 무사히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영문도 모른채 갑작스런 미군 공격에 하나 둘씩 죽어가게 된다.

 
감상:

<작은 연못>은 한국전쟁 당시 실제로 있었던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보통 이러한 학살이나 내전을 소재로 한 전쟁 영화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을 이끌내거나 전쟁의 참혹함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군인에게 대항하는 주인공을 만들어 희생시킨다던지 선악구도를 확실히해서 피해자들의 희생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말이다. 그러나 영화 <작은 연못>은 이러한 기존 전쟁영화와는 엄연히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작은 연못>에는 특정 주인공도 특별한 선악구도도 존재 하지 않는다. 보통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연이 있고 그들을 괴롭히는 악역이 있으므로 인해 생기는 갈등을 통해 전쟁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기존 영화들의 화법이었다. 그러나 관객들이 보기엔 <작은 연못>의 특별한 주인공도, 악역도 없어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감독인 '이상우'씨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주인공으로 마을 사람 전체를 설정했고 딱히 선악구도로 이야기를 이끌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 점으로 봐서 관객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덕분에 영화는 굉장히 생소하고 담담한 느낌을 준다. 특별한 갈등이 없기에 담담하고 기존의 화법과 다르기에 굉장히 생소한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 부분은 영화의 절정인 학살 장면을 더욱 사실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해주게 된다. 갈등이 없으므로 인해서 감독의 개인적인 메시지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어지고, 갈등으로 인한 영화적 재미가 없기에 쓸데없는 연출이나 기교가 제외되면서 더욱 사실적인 학살 장면이 만들어진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영화는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작은 연못>의 힘은 이 사실성에서 나온다. 비록 기존 영화들을 따라가지 않기에 사람들의 극적인 감정동요를 일으키진 못하지만, '노근리 양민 학살'이라는 사실에 대한 기억을 똑똑히 하게 만들어준다. 영화적인 연출을 통해 영화같은 이야기 즉 허구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잊혀지는 것이 아닌, 담담하고 사실적인 연출을 보고 이것이 과거 존재했던 사실임을 인식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실을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바로 지금까지 영화 속에서 사건과 거리 두기를 시도했던 감독의 진짜 메시지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성은 다른 어떤 극적인 연출을 한 영화보다 전쟁의 모습을 머릿 속에 더욱 깊게 새겨준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총알 한방에 어이없이 죽고 폭격에 사지가 잘려나간다. 영화같은 영화에선 사람들이 총알을 몇대씩 맞아도 죽지 않고 폭발에는 항상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 장면과 달리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극적인 연출을 지향하는 영영화보다 더욱 전쟁의 참혹함과 허무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가공되지 않은 진실에 가까운 연출이 오히려 감정을 자극하려는 연출보다 더욱 감정적이고 자극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연못>이 마냥 사실적이고 기록 영화같은 느낌을 주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학살 장면의 사실적인 묘사와는 달리 나머지 부분은 오히려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아마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를 정도다. 고래가 하늘을 떠다니고, 죽은 사람들과 산사람이 섞여 아이들이 합창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사실적으로 그려졌던 학살 장면들과 대조되면서 가슴이 참으로 답답해진다.

<작은 연못>은 조용하고 무언가 강요하지 않는 영화다. 하지만 무언가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이야기를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전쟁은 누군가가 멈춘다고 멈춰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전쟁은 참혹하고 허무한 것이라고, 그리고 모두를 불행하게한다는 사실이 새겨져있을 때 비로소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P.S 이 영화의 여러 필름은 개봉 전 시사회에서 진행된 '필름 구매 캠페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마도 극장에서 상영이 시작되기 전에 100명의 이름 리스트가 뜬다면 그 필름은 그 분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필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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