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허트 로커] 극한의 긴장감, 그리고 개인의 삶
ksge7
2010. 5. 1. 02:34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줄거리:
전 후 이라크 바그다드. 폭발물 제거 전담 EOD팀의 멤버들은 현장사고로 팀장을 잃게 되고, 새로운 팀장 '제임스'(제레미 레너)를 맡게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던 그는 전임 팀장과 달리 독단적인 행동으로 팀 멤버들과의 마찰을 빚기 시작한다. 결국 임무를 수행할수록 그의 무리한 행동은 팀을 위험에 빠뜨리는 등 부작용을 낳게되고, 팀장과 팀원들의 갈등은 깊어져만 가는데...
감상:
지금까지 나왔던 <지옥의 묵시록>, <디어 헌터>와 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살펴 보면 보통 반전과 같은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있었다. 그렇기에 장르 영화적 재미는 살짝 부족한 감이 있는데 반해, <허트 로커>는 영화속 메시지는 물론 장르 영화적인 재미까지 가진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웰메이드'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 덕분에 <허트 로커>는 장르 영화적 재미를 추구하는 관객에겐 재미를, 재미를 넘어 메시지까지 찾고 싶어 하는 관객에겐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종합 선물 세트같은 영화가 되었다.
먼저, 영화적 재미 부분부터 이야기 해보자면 <허트 로커>는 근래 나온 영화 중 가장 긴장감 넘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극한의 긴장감을 느끼는 순간을 속된 말로 똥줄탄다고 한다. <허트 로커>는 바로 그 똥줄타는 긴장감을 경험할 수 있는 영화다. 이라크 바그다드 한복판. 누가 반군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EOD팀 단 3명이서 폭발물을 제거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다. 게다가 보기만해도 더운 중동의 기후에서 50kg짜리 방호복을 입은 주인공이 느릿느릿 걷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자신이 주인공보다 더운 것 같고 숨이 턱턱막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긴장감을 느꼈던 순간들은 적들의 시선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는 때 였다. 왠지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적나라하게 쳐다보고 있다란 느낌. 게다가 그에게 내 목숨이 달려있다라는 것. 상상만해도 뒷통수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감독인 '캐서린 비글로우'는 '관객들이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라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녀는 그만큼 영화에서 관객들이 실제 EOD팀이 느끼는 긴장감에 중점을 두고 연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다음은 메시지로 넘어가서 이야기를 해보자.
전쟁은 개인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 것일까?
바로 이러한 물음은 그동안 많은 전쟁 영화들이 해왔던 질문이고, <허트로커> 또한 이 연장 선상에 있는 영화다. 잠시만 생각해보면 오래전 일어났던 베트남 전이나 최근 일어난 이라크 전이나 전쟁의 배경이나 발발원인은 다를지언정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큰 차이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쟁에 참전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 째는 전쟁의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 속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들 두 번째는 그 광기에 몸을 맡기고 그야말로 전쟁에 미치는 부류이다.
영화 초반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허트로커> 주인공 '제레미'는 바로 이 메시지에 딱 어울리는 전쟁에 미친 남자다. 폭발물 처리 임무에 있어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폭탄에 대해서 조심하고 겁을 먹지만 그는 방호복을 벗어 던지고 폭탄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룬다. 그는 남들이 두려워하는 폭탄이 주는 공포감과 쾌감에 중독되고 결국 그 중독이 도를 넘어 무감각의 경지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사실상 일반인처럼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감동이나 기쁨을 느끼기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다.
그가 폭발물을 처리하고나서 대령이 그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이있다. "자네 지금까지 몇개의 폭발물을 제거했는가?" 그러자 그가 대답한다. "873개 입니다." 그의 훈장과도 같은 그 숫자는 지금까지 꾸준히 늘어나면서 그에게 엄청난 쾌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반면 그 늘어나는 쾌감과 달리 그가 정상적인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은 줄어들어갔다. 어떻게 보면 그 837개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는 그를 점차 기계와 같은 사람으로 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제레미'를 보면서 '크리스토퍼 월켄'이 연기한 <디어 헌터>의 '닉'이 떠올랐다. 베트남전의 충격으로 여전히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죽음을 건 러시안 룰렛을 하는 그. 누구나 겁을 먹는 이 게임에서 그는 기계적으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 대고 있었다. 죽음을 건 도박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이 겪었던 두려움과 부담감을 이겨내려고 하는 '닉'의 모습은 <허트 로커>의 '제레미'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허트로커>의 '제레미' 또한 '닉'과 같이 자신의 존재 이유는 그저 폭발물 제거뿐이었다. 영화 후반부 '제레미'가 자신의 아들에게 자기 나이가 되면 인생에 소중한 건 한 가지 정도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그에게 소중한 한 가지는 바로 폭발물 제거인 것이다. 차라리 <디어 헌터>의 '닉'처럼 정신이라도 나가면 나았을 텐데 DVD소년을 돕고 동료들을 챙기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가 정상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게되면서, 전쟁 중독자인 그에게서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전쟁은 국가가 시작했지만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개인이고, 전쟁은 잠시일 뿐이지만 그 피해를 본 개인의 삶은 철저히 파괴된다는 사실을 <허트 로커>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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