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이하 피판)에서 <영화보다 차가운, 21세기 잔혹 영화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대화가 이루어진 메가토크는 제가 이번 피판 스케쥴 중에서 가장 기대하던 프로그램인데요. 사실 기대만큼 꽤 내실있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습니다. 뭐 다른건 다 둘째치고, 통역문제에서 아주 큰 허점을 드러내면서 프로그램 전체 분위기가 그냥 가라앉았습니다. 쓸데없이 시간도 많이 지연되었구요.
다음부터 피판에선 비 영어권 감독님들을 위해 좀 더 세심한 통역가를 고용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어쨋든 이번 글에선 그 날 이루어졌던 대화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아마 2시간가까이 대화가 이루어졌기때문에 굉장히 내용이 깁니다. 이점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질문의 내용은 진행자의 질문과 관객의 질문, 그리고 감독분들이 다른 감독분들께 하는 질문 총 3가지로 나뉘어서 적혀져있습니다.
※ 내용엔 심각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 관람 전이시라면 이 글을 읽지 않는 쪽을 추천해드립니다.
※ 대화내용은 글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약간의 수정 및 삭제를 거쳤으니, 이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메가토크2 <영화보다 차가운, 21세기 잔혹영화를 말한다>
참가자:
- 이상우: <내 아버지의 모든 것> 감독
- 이마이즈미 코이치(이하 코이치): <완전한 가족> 감독
- 스르쟌 스파소예비치(이하 스파소예비치): <세르비안 필름> 감독
Q. 먼저 이상우 감독님께 질문하겠습니다.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상우: 영화에서 보면, 보통 부인은 일반인 그리고 남편은 게이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이 한국에선 얼마나 고통스럽고 큰 일인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흔히 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 게이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던 단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분명 저런식으로 평범해보이는 가족이지만, 실은 남편이 게이였던 가정도 있었을겁니다. 그런 가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Q. 그동안 굉장히 많은 영화에서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영화를 잔혹하게 만드셔야했는지, 그 의도를 알고 싶습니다.
이상우: 먼저, 말씀드릴 것이 사실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이 제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중에서 가장 약한 수위의 영화거든요. 근데 피판에서 잔혹 영화라고 하면서 이 영화를 뽑아 간다길래, "이 영화 사실 별로 잔혹하지 않은데..."하면서 관객분들이 실망하실까봐 내심 걱정했는데요. 정말 잔혹 영화라고하고 이런 약한 수준의 영화를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재촬영하려고했는데 사실 그것도 힘들고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었는데요. 다음 작품은 좀 더 잔혹하게 찍어서 내년 피판에 다시 한번 초대되었으면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가 그동안 제 영화에서 굉장히 상황적으로 연출적으로 굉장히 잔혹한 장면을 많이 보여드렸는데요. 저는 영화를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인가?"를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최대한 잔혹하고 과감한 표현들을 많이 하게 된 것이고요.
Q. 다음 질문은 <완전한 가족>의 이마이즈미 코이치 감독님께 드리겠습니다. 영화 내에서 정말 노골적일 정도로 계속된 성행위가 나오는데, 이렇게 연출을 하신 의도를 알고 싶습니다.
코이치: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포르노 그라피적 상황을 그린 이 영화는, 사실 제가 그동안 찍어온 영화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제가 그동안 찍어온 영화들이 보통 연인들 사이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에선 그 시선을 가족으로 옮겨갔지요. 그러다보니 그 이야기가 가족으로 옮겨가서 그 안에서 많은 성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굉장히 표현에 자유롭기 때문에, 이야기를 위해 다양한 표현을 연출해내는데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영화 속에서 굉장히 많은 성관계씬이 연출된 것 같습니다.
Q. 관객들에게 있어,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 생각으로 만드셨습니까?
코이치: 물론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느냐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저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확실한 자극을 받길 바랬습니다. 그것이 성적인 흥분이든 문화적 충격이든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이 동성애에 관해서 무언가 느꼈으면 했습니다.
Q. 영화 내에서 가족을 해체하는 방식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그에 대해서 한 말씀하신다면?
코이치: 사실 그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질문을 받다보니 새롭게 생각난 것에 대해서 말씀해드리도록하겠습니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데, 전 사실 가족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약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가정에 대한 집착도 적구요. 이는 다시 말해 제가 가족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요. 전 이 영화를 통해 가족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스르쟌 스파소예비치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세르비안 필름>을 만드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스파소예비치: 세르비아는 그동안 전쟁으로 인해 사회와 가족이 파괴되어왔는데요. 전 그런 모습을 이 <세르비안 필름>을 통해 비유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한국에선 포르노가 굉장히 비일상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세르비아에서의 포르노는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볼 때 조금 더 일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상적인 포르노와 가족을 연결지어서, 그런 잔혹하고 성적인 일들이 우리의 평범한 가정에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세르비안 필름> 속엔 굉장히 잔혹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러한 연출을 하게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스파소예비치: 앞서 말씀드렸듯이, 세르비아 사회는 현재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런 세르비아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구요. 그래서 영화 속에 나타나는 잔인한 장면들은 혼란스런 세르비아 사회에 대한 비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즉 굉장히 성적이고 가학적인 많은 장면들은 혼란스런 사회를 비유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의 질문
Q. <세르비안 필름>을 보고, 현실이 굉장히 잔혹하다는 사실에 굉장히 슬펐습니다. 영화를 보면 마지막 결말마저 굉장히 비극적인 순간으로 만들어버리는데, 굳이 영화 상에서 모든 희망을 없애버려야할 이유가 있었습니까?
스파소예비치: 제가 어떠한 희망도 남겨두지 않은 것은, 현재 세르비아 사회가 그만큼 혼란스럽고, 그 혼란에서 빠져나올 탈출구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Q. 영화를 보기 전, 인터넷을 통해 <세르비안 필름>에 대한 리뷰를 미리 찾아서 봤는데요. 영화 속에 정치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도 경찰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불법을 자행하는 장면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영화가 세르비아 정부를 비판하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찍으신 건가요?
스파소예비치: 이 영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정부를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은 없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경찰 유니폼은 권위에 의해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제한되고 변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절망적인 세르비아 사회 전체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지, 따로 정부를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은 없었습니다.
Q.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의 소재는 한국 영화치고 굉장히 파격적인 것 같습니다. 그 수위는 어떻게 정하셨나요? 그리고 영화 내내 어머니는 부재해있고, 아버지는 계속 게이로 그려지는데 왜 이렇게 상황을 만드셨나요?
이상우: 이 영화는 저까지 3명의 감독이 옴니버스 식으로 찍은 영화인데요. 각각의 영화는 협의를 거쳐, 감독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 답해드리자면, 이건 좀 개인적인 성향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랑 각별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영화 내에서 무언가 나쁜 역할이나 색다른 역할은 모두 아버지가 맡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도 계속 아버지를 게이로 내세웠던 것이구요.
Q. <완전한 가족>에 나오는 쿠마(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코이치: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냥 영화 내에서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애완 동물의 역할을 하는 동물입니다. 다만 촬영 내내 정말로 곰을 쓸 수 없기때문에, 곰 인형 탈로 대체했는데,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아무래도 관객들의 시선이 쿠마에게 쏠리는 것 같습니다.
Q. 흔히 퀴어 영화들은 보통 편견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굉장히 진지하기도하고 동성연애란 소재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완전한 가족>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영화가 굉장히 웃깁니다. 왜 다른 영화와 달리 <완전한 가족>을 웃기고 재미있는 분위기로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코이치: 일본의 퀴어 영화도 질문자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일반인들의 편견이나 차별에 맞서싸우는 내용을 그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전 동성연애자들이 과연 이런 진지한 내용의 영화를 보고 즐거워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일본 퀴어 영화의 주 소비층은 사실 젊은 여성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퀴어 영화는 이런 젊은 여성을 타켓으로 만들어지고 있고요. 그래서 전 이런 퀴어영화들은 진정으로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전 동성연애자들도 보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고, 그 결과 나오게 된 작품이 바로 <완전한 가족>입니다.
Q. <세르비안 필름>을 보면 굉장히 잔혹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러한 장면들은 자료 화면으로 포르노 영화를 직접보다가 머리 속으로 팟하고 떠오른 것인지, 아니면 영화 속에 잔혹한 장면들을 집어 넣기위해 시나리오를 쓰면서 열심히 생각해내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스파소예비치: 사실 그 장면 하나하나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유적인 차원에서 설정한 것입니다. 목을 자른다든지 하는 장면들도 사실 그냥 넣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는 광기나 잔혹성 등에 대해서 나타낸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장면들은 어떠한 것에서 영감을 얻기보단 제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것들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들입니다.
Q. 완전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모든 가족이 성관계를 했기때문에 완전한 가족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던 가족들이 모두 죽고, 그나마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둘째 아들 혼자만 남아서 완전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인지, 그 장면을 어떤 의도로 연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코이치: 사실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은 관객 여러분께 맡기고 싶습니다. 물론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찍을 때, 영화 속 장면마다 제가 연출한 의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을 보면서 항상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어떠한 장면에 대해서 제가 이렇다고 딱 못박는 것보다는 관객 여러분들이 직접보고 자신만의 해석을 내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뭐 굳이 그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드리자면 아마도 T-바이러스가 가족사이에 모두 완전하게 공유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에 이어서 계속 말씀드리자면, 질문자분께서 라스트씬을 보고 제가 생각한 것과는 또 다른 두가지 생각하신 것처럼 같은 영화를 봐도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하는 표현활동에는 미술, 음악,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요. 제가 그 중에서도 영화라는 표현 활동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렇게 관객과 대화를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화를 보고나서 관객들이 가진 다양한 생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들의 새로운 생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세르비안 필름>에서 엄마가 아이를 낳고나서 그 아이가 앞으로 비극적인 상황에 처할 것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데요.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스파소예비치: 그 부분은 바로 제가 이 영화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유인데요. 그 미소에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가 숨어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엄마가 아이를 낳고 짓는 미소는 그 아이가 잘 자라길 바라는 그런 마음에서 짓는 미소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아이는 굉장히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있죠. 전 이 장면을 통해 아이가 사실 어른들의 바램과는 달리,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어쩌면 고문과도 같은 끔찍한 상황에 쳐해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즉 그만큼 제가 살아온 세르비아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굉장히 괴롭고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지요.
감독이 감독에게
코이치: 사실 이상우 감독님의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이나 제 영화와 같은 퀴어 영화들은 보통 자금 사정이 좋지 못해, 저예산으로 촬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수위가 높은지라, 배우들 구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인데요. 이상우 감독님의 작품을 보니 굉장히 어리고 젊은 배우들이 나오는데 그런 배우들은 어떻게 섭외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상우: 사실 제 영화가 인디 영화제 같은데서만 상영되다보니 그리 큰 돈은 벌질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출연료를 절감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앞서 본 3편의 옴니버스 영화에서처럼 제가 직접 출연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 이외의 배우들은 대부분 인터넷이나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서 섭외를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만드는 작품들이 수위가 높은 작품들이 많아서, 배우들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배우들에게 출연료나 밥값을 주는게 정상인데요. 저희 영화는 돈이 없다보니, 오히려 그 반대로 배우들이 제작진 밥을 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영화 찍을 때 한 친구는 아버지가 굉장히 잘 사셔서, 영화 촬영 내내 저희한테 밥을 사줘서 너무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