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
함경북도 무산군 출신의 탈북 청년 승철. 그가 남한 사회에 정착한지는 한참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탈북자에 대한 차별로 인해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전단지를 돌리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바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숙영이다. 그는 숙영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녀가 일하는 노래방에 취직하지만, 그의 신분과 남한 사회에 대한 부적응으로 인해 일은 점점 꼬여만 간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승철과 같이 살던 친구 경철이 벌인 사업이 꼬이면서 그의 남한 사회 적응은 더 힘들어져만 가는데...
감상:
나이트 클럽 포스터나 붙이며 근근이 살아가는 청년 승철. 그가 남한 사회에서 무산 계급(재산 없이 힘든 노동으로 살아가는 계층)으로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바로 무산 출신 즉 탈북자이기 때문이다. 남한 사회에서 그는 탈북자이기에 차별 받으며 살아간다. 공장에선 그의 신분을 꺼려해서 허드렛 일조차 주지 않으려하고, 동네 건달들은 그를 꾸준히 괴롭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내는 법이 없다. 주변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해나간다. 그나마 그가 화내는 상황은 자신에 대한 남한 사회의 차별이나 시선이 아닌 바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일을 봤을 때 뿐이다. 친구 경철이 같은 탈북자들의 등쳐먹을 때나 노래방에서 손님들이 도우미를 농락할 때 그제서야 그는 조금이나마 자신의 언성을 높일 줄 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주변 사람들은 잘못했다고 바보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도덕적인 올바름이 아닌 사회에서 얼마나 더 악착같이 살아남는가이다. 남을 얼마나 짓밟지 못하고, 구차한 변명따위 하지 않는 승철은 그들에게 바보같고 어리석은 존재로 인식된다.
감독은 무산 계급이지만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는 승철이 남한 사회에 어떻게 취급받고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한다. 그가 표현하는 승철의 삶은 탈북자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능력 부족이 낳은 무산(無産)의 삶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향으로 인해 그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무산의 삶이다. 승철은 노력하고 싶지만 차별과 시선 그리고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남한 사회에서 철저히 무산 계급으로 몰리고 무능력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취급받는다. 영화는 이러한 승철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 폐부에 카메라를 깊숙이 들이댐으로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한지 나타내고 있다.
영화는 승철의 삶을 극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촬영에는 별다른 기교도 없고 영화적인 연출은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승철이 충격적으로 변신이 드러나는 라스트씬에선 약간이나마 피치를 올려도 될 법한데 카메라는 그저 멀리서 승철을 바라 보기만 할 뿐이다. 이러한 표현법은 주인공 승철의 실제 모델인 전승철과 감독이 친분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조심스럽게 촬영을 한 부분도 있을테지만, 무엇보다도 감독이 승철의 이야기를 그저 영화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로써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부분으로 보인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무산일기>의 라스트씬은 승철의 변신을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적 재미로 끌어내리지 않으려는 감독의 뚝심이 엿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사실 <무산 일기>는 영화적 재미라는 측면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산 일기>는 그 영화적 재미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건 단순히 기교가 뛰어나서라든가 시나리오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 안에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일 수 있는 뚝심과 거기서 나오는 강렬함 그리고 영화를 완성해야겠다는 의지와 절박함이 온전히 느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