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FFS] 충무로 국제 영화제 잘 되가고 있는 것인가?
최근 요 몇년 사이 국내에는 제천 국제 음악 영화제를 비롯해 서울 국제 건축 영화제 그리고 이주노동자 영화제까지 아주 다양한 소재와 목적을 가진 영화제들이 하나 둘 씩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영화제의 등장은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문화와 생각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동시에 지자체의 홍보 그리고 문화 산업의 발전 등 우리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효과들을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최근 국내에서 영화제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자, 영화제들의 소재나 목적의 중복, 개최 시기의 중복 등으로 각 영화제만의 개성이 사라지고, 심한 경우 영화제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신생 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날로 성장하는 영화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충무로 국제 영화제(이하 CHIFFS)였습니다.
2007년 처음 개최된 CHIFFS는 중구를 비롯한 서울시와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아래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며, 작년 2009년 개최된 3회 영화제의 경우는 무려 60억이라는 예산을 투입하며 부산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 영화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적인 성장과 달리 CHIFFS는 사실 시작부터 굉장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먼저 영화제 외적인 부분부터 보자면, CHIFFS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도 쭈욱 불거져나온 CHIFFS가 구청장 홍보용 치적이라는 논란을 비롯해 정치인들의 이름 언급이나 무대인사, 방만한 예산 운용 등의 문제가 있었으며, 영화제 내적인 부분으로는 미흡한 행사 운영, 공짜표 남발, 단체관람 유도, 공무원 자리 채우기 등 영화제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영화 자체의 힘보다는 돈과 정치 권력으로 인해 성장한 CHIFFS는 올해 서울시의 대규모 예산 삭감으로 인해 행사 연기 및 규모의 축소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동안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저냥 묻어두면서 방치한 결과이자, 다른 영화제들이 없는 예산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것과 달리 단순히 큰 돈만 가지고 판을 키운 행동에 대한 대가 일 것입니다.
물론 CHIFFS 측에서도 아예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런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닐 겁니다. 그동안 CHIFFS의 집행위원장을 맡아왔던 이덕화 씨는 작년 기자회견 장에서 CHIFFS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매우 힘든일이란 것을 토로하면서, CHIFFS가 단순히 지자체 산하에 있는 영화제가 아니라 독립적이면서 훨씬 더 영화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영화제로 발돋음 했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또한 올 1월 CHIFFS의 사무국은 CHIFFS의 사단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영화인 중심의 독립적인 영화제를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지금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변한건 아무것도 없고 영화제 자체의 존폐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물론 지금 현재 2010년 행사의 경우 정상적으로 계속 강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계속 CHIFFS를 주시해온 제 입장에서 볼 때 이번 행사 아마 치뤄지더라도 거의 졸속으로 치뤄지거나 심한 경우 행사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데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제가 올해 CHIFFS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대략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홈페이지 관리 미흡입니다. 요즘과 같이 인터넷을 통해 영화제 티켓을 예매하고, 영화제와 관련된 많은 정보를 얻는 시대에, 영화제 홈페이지의 관리는 그야말로 영화제의 성패를 가르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행사를 보름도 남기지 않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CHIFFS의 홈페이지는 그야말로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보입니다.
위 팝업창의 경우 현재 CHIFFS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뜨는 팝업창인데, 자세히 보기를 누르면 영화제 일정 변경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 자세히 보기 버튼을 누르면 정작 일정 변경에 관한 정보는 나오지 않고, 영화제 멤버쉽에 관한 정보가 나옵니다. 또한 이외에도 예매가 일주일도 안남은 시점임에도 홈페이지엔 상영작의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영화제 이벤트 란에는 작년 2009년 열었던 이벤트의 정보가 그대로 남아있는 등 작년 영화제 개최 이후로 홈페이지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확정되지 않은 상영작 or 확정되었으나 공개되지 않은 상영작들입니다. 영화제를 구성하는데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단연 영화제 상영작일겁니다. 영화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그 공개만으로도 영화제의 홍보 대사 역할을 하는 한편, 영화제 흥행의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CHIFFS의 경우 현재 일반 상영작들은 커녕 개막작과 폐막작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CHIFFS의 블로그에서 보니 다음주에 상영작이 공개된다는데, 다음주 당장 예매가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정말 CHIFFS 측에서 행사를 포기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가뜩이나 지금 CHIFFS에 대한 악명이 자자한 상황에서 뭘믿고 이렇게까지 프로그램을 늦게 공개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마지막 셋째, 이건 작년부터 계속 거론되어온 문제인데 바로 영화제 정체성의 부재입니다. 원래 어느 영화제든 어느 정도 그 영화제의 이름이 나오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게 마련입니다. 부천의 경우 장르 영화 특화 영화제, 선댄스영화제의 경우 세계 최고 독립영화제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CHIFFS는 그런 정체성이 없습니다. 사실 CHIFFS 초기엔 고전 중심의 영화제라는 컨셉이 있었지만, 그건 영화제가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작년 3회 영화제를 기준으로 고전30%, 현대50%, 미래20%라는 상영작 비율을 정하면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은건 어떠한 컨셉도 없이 고전과 현대물이 복잡하게 뒤섞인 정체성 없는 영화제라는 이미지 뿐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영화제에 있어 어떠한 이미지나 컨셉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관객들은 영화제가 열릴 시기가 다가오면 아무런 정보 없이도 그 이미지나 컨셉 하나만으로도 영화제를 떠올릴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CHIFFS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CHIFFS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만 나오고, 제대로 된 홍보도 되지 않았으니 영화제에 컨셉이나 이미지는 그야말로 최악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전 이렇게 어떤 영화나 대상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글을 쓰고 난 뒤엔 조금이나마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항상 마지막에는 "그래도 영화계란 관련된 일이니깐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식 말을 덧붙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CHIFFS가 해온 일이나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과 그에 대한 대응을 볼 때, 사실 CHIFFS에 대해 그런 말을 하기가 싫습니다. 뭐 제가 그런 말을 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CHIFFS의 사정이 바뀌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어쨋든 그냥 제 CHIFFS에 관한 심정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비판을 받고도 여전히 변함 없는 걸 보면, 오히려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쨋든 올해 CHIFFS가 얼마나 제대로 행사를 치뤄내는지 영화제 기간 내내 매의 눈으로 감시를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