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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13년, 평화롭고 조용한 독일의 시골 마을. 마을 의사가 누군가 몰래 쳐놓은 줄에 걸려 낙마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마을의 분위기는 뒤숭숭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을 최고 권력을 가진 남작의 아들 '지기'가 사라지는 사건까지 연이어 벌어지자, 마을은 그야말로 불신과 시기로 가득 차게 되고, 사람들의 삶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감상:
솔직히 이 영화 쉽지 않다. 가장 먼저, 현대의 관객들에겐 너무나도 어색한 흑백 화면이 그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며, 다음으론 명확하지 않은 사건의 결말들 그리고 우리에겐 멀게 느껴지는 유럽의 역사들까지..한국 관객들이 이해하기엔 좀 어려운 구석이 있는게 사실이다.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에 빛나는 작품이자 평단의 호평을 받은 영화지만, 이러한 평가는 전문가들에게만 통용될 공산이 크다'는 씨네21의 설명답게 <하얀 리본>은 일반 관객이 접근하기 힘든 영화다.
사실 처음엔 나도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굉장한 걱정을 했다. 가장 먼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142분이라는 긴 상영시간과 흑백 화면이라는 물리적 장벽이었고, 다음으론 내용이 어렵다는 세간의 평가에서 오는 심리적 장벽이었다. 컬러가 만연한 시대에 연출을 위해 컬러를 버렸다는 점 그리고 내용들이 파시즘, 1차 대전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흑백에 익숙치 않고, 다양한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하얀 리본>은 너무나 어려운 영화였다.
그리고 역시나 영화 초반은 굉장히 지루했다. 가뜩이나 답답한 흑백 화면에 숨막힐 듯이 절제된 연출로 이렇다 할 시각적 자극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인물들의 대사를 제외한 배경음악이나 효과음같은 소리들은 최대한 배제했기때문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도 화면과 연출을 따라가는지 그야말로 무미 건조함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영화를 통틀어서 배우들이 웃는 장면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솔직히 어떻게 보면, 일반 관객들은 영화 한 30분보다가 나가도 할 말 없다 싶을 정도다. 하지만 <하얀 리본>의 진가는 영화 중반부, 남작의 아들인 '지기'가 납치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동안 연결고리가 없어보이던 사건들이 새로 발생하는 사건과 더불어 조금씩 그 연결 고리를 드러내고, 영화 속 진지한 주제가 극도로 절제된 연출 아래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때, 관객들은 그 느리고 답답한 화면 속에서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히는 긴장감을 경험하게 된다.
사실 <하얀 리본>에서 영화가 진행 될수록 관객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영화 초반 낙마 사고의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 수록 마을 안에서 드러나는 인물간의 관계, 권력의 위치, 억압에 대한 반항이다. 1900년 대 초 시골 마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당시 독일에서 일어나는 파시즘의 시작을 예견하고 있는데, 관객들은 그저 범인이 누구인가 찾는 단순한 스릴러 물이 아닌,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비뚤어진 사회상을 반영한 모습이 한꺼풀씩 벗겨지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하얀 리본>은 어떠한 것도 무엇이라 확정짓지 않는 영화다. 물론 후반부에 들어 감독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듯, 영화 속 화자인 학교 선생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마저도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결국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그리고 그 모태가 된 독일의 시대상황까지 모든 상황에 대한 결정은 관객에게 그 몫을 돌리고 있다. 덕분에 관객 입장에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영화지만, 어떻게 보면 그래서 더 머리 속에 오래 남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PS. <하얀 리본>은 현재 전국 통털어 딱 두 곳에서만 상영중이다. 하나는 하이퍼텍 나다, 그리고 또하나는 씨네큐브 광화문 단 두 곳의 상영관에서만 상영 중이다.
PS2. 영화 포스터를 보면 소년이 눈물을 흘리는데, 아마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눈물의 절묘한 의미를 알고는 감탄 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