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겉으로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이나, 실은 미국 CIA의 우수 요원인 '에블린 솔트'. 어느 날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러시아에서 망명을 요청한 스파이가 그녀를 미국과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로 지목한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CIA를 비롯한 여러 단체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위해 자신의 능력을 총 동원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감상: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나온 많은 액션 영화들을 보면 그 시대에 따른 악당들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과거 냉전 시대,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악당들은 러시아를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사람들이었고, 냉전 종식 이후엔 중국이나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 타켓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현대 역사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이었던 9.11 사태 이후 할리우드의 악당은 중동의 테러리스트 또는 미국 정부 그 자신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관객들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동시에 또다른 한편으론 시대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항상 제공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 이후 망해버린 구소련의 낡은 유물들이 적으로 등장하는 <솔트>는 다소 시대 착오적인 느낌까지 든다. 물론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을 필두로 러시아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급 성장하긴했으나, 이렇게 갑작스레 또다시 할리우드 영화 속 악당으로 출연하기엔 그들의 등장이 너무나 뜬금없다. 예를 들자면 2차 대전 나치 독일 아래서 키워졌던 스파이들이 갑작스레 80년대가 되어 미국을 공격한다는 그정도의 이야기랄까...어쨋든 그 정도로 구 소련의 스파이들의 등장은 너무나 뜬금없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솔트>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면이 보이기도하고, 여러모로 편한 길로 가려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개인적으로 <솔트>가 굉장히 비현실적이라고 느낀 이유는 바로 영화 속 미국이 너무나 나약한 존재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국을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솔트>에서 나온 미국은 내가 생각하던 그런 미국과는 전혀 다른 국가였다. 너무나도 허술하고 약했다.
난 이미 망한지 20년도 더 된 소련의 어린이 스파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된 후, 미국을 이렇게 쉽게 요리할 줄은 몰랐다. 미국을 비롯해 사실상 전세계 최고의 자리에 앉아있는 미국 대통령과 그가 사는 백악관은 구소련의 스파이들에게 그야말로 복날의 개맞듯이 그냥 한 방에 모두 다 털려버린다. 게다가 그 숫자는 단 두명...물론 영화적 상상력에는 제한이 없다하지만 그 상상력도 어느 정도 영화의 장르에 맞춰서 구현해내야지. 이건 SF물도 어드벤쳐 액션물도 아니고 솔직히 좀 심했다.
간혹 영화는 영화로 봐야지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살짝 이야기하자면, <솔트>는 그 나름대로 영화 속 배경을 최대한 현실성있게 그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면 최근 전세계적으로 큰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한을 영화에 전면 등장시킨다든가, 중동과 미국의 정치적 관계를 조명한 부분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영화 속 사건은 너무나 터무니 없어서 앞에서 이야기한 자신의 노력들을 한방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솔트>가 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본>시리즈와 달리 비현실적인 느낌들이 팍팍 나는 것은 자기 자신이 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장치들을 자기 손으로 직접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처음부터 가상의 역사물로서 존재를 확실히 하든가, 아니면 영화 내내 계속 현실성을 강조하는 노선으로 갔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솔트>에서 눈에 띈 단점은 바로 이야기를 편하게 전개하기 위해 약간 황당한 설정들을 영화 속에 집어 넣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다시 말하면 영화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 함에 있어, 어떠한 고생도 없이 그저 몇 가지 황당스런 설정만으로 편한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째서 소련에서 그많은 스파이를 미국으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바보처럼 눈치 한 번 못챈 것인지, 게다가 심지어는 그 스파이를 대통령 경호팀에 배치하고 CIA의 요직에 배치한 설정도 참으로 어이가 없다. 솔직히 이야기를 간단하게 진행하기 위해 너무나 황당한 설정을 영화 곳곳에 배치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지금까지 <솔트>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솔직히 이 영화에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솔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라면 단연 '안젤리나 졸리'의 멋진 연기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툼 레이더>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많은 액션 영화에 출연한 경력답게, <솔트>에선 아주 어려운 액션씬을 아주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소화해낸다. 그리고 액션씬이 없는 장면에서도 대사 하나 없이 눈동자 하나로 모든 상황을 말하는 그녀의 연기를 보고있자면 괜히 그녀가 전세계적으로 여신 소리를 듣는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영화안에서 벌어지는 아주 거침없는 액션씬들도 꽤 마음에 들었다. 특히 여성이 주인공인 액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결투씬에서 사정없이 맞고 때린다든지, 트럭 지붕위를 붕붕 날아다닌다든지 하면서 007 시리즈나 <본>시리즈 못지 않은 화끈함을 보여준 점은 여름에 개봉하는 액션 영화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잘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트>의 딱 그뿐인 영화였다. 솔직히 <솔트>는 연출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든지, 아니면 참신한 스토리를 내세운다든지하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그저 기존에 '안젤리나 졸리'가 가지고 있는 여전사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 딱 그 정도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듯 보였다. 영화적 성취를 위한 욕심도 없고, 그저 여름에 좀 적당히 팔릴 만한 그 정도의 작품을 만드는게 목표로 보일 정도로 정말 평범해 보이는 작품이었다.
물론 평범한 게 나쁜 건 아니다. 게다가 이런 여름에 개봉하는 액션 영화들은 솔직히 평범하다못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도, 장르 영화로써 재미를 관객에게 전달하면 그걸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안젤리나 졸리'라는 멋진 배우를 이용해 아무런 영화적인 성취 없이 그저 그동안 그녀가 찍어온 액션 영화들을 반복하는 수준의 영화 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정말 너무나도 너무나도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