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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와 <아이언맨> 그리고 어린이 날과 영화에 대한 생각들영화와 현실 사이 2010. 5. 7. 16:23
어제는 가정의 달의 시작을 알리는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저도 어린이였던 적이 있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공휴일이라는 혜택을 얻고 있기에 어린이 날을 매우 좋아합니다. 게다가 어제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였기에 날씨는 따뜻함을 넘어 약간 더울 정도였지만 그래도 나가 놀기엔 너무나 좋은 날씨여서 기분이 더욱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영화관들도 이러한 따뜻한 날씨와 어린이날이라는 휴일을 맞이하여 가족 관객이나 일반 대중의 취향을 반영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 날에 맞춰 <토이 스토리> 1,2의 3D버전과 같은 영화들이 상영을 시작했으며, <드래곤 길들이기>의 경우 반짝 흥행을 노리고 변칙 개봉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최고의 이슈 작품인 <아이언 맨2>의 경우는 당연하다는 듯 이 날 대부분의 멀티플렉스 극장 상영관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예술 영화들에게 있어 어린이 날은 찬바람이 쌩 불기 시작하는 고난이 시작되는 날인 것 같습니다. 5월 가정의 달에는 어린이 날을 필두로 대중적인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고 이에 따라 예술 영화에게 할당되는 상영관 수가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크게 이 효과를 체감한 영화는 아마도 홍상수 감독님의 <하하하>라고 보여집니다. 5월 5일 어린이날 개봉한 영화 <하하하>는 홍상수 감독님의 네임 밸류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영화들에게 밀려 어제 개봉 당일 하루 동안 다른 영화와 함께 교차 상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어린이 날이 끝난 오늘 5월 6일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전회 상영을 시작하는 곳도 생기긴 했습니다만, 우리 나라 최대 영화 체인인 CGV의 경우는 여전히 교차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CGV는 5월 내내 잡힌 다른 영화의 스케줄로 인해 상영관을 내어 줄 수 없는지, <하하하>를 여전히 다른 예술 영화들과 함께 교차 상영으로 이른 아침 조조 또는 밤 늦은시간 상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하하>의 경우는 홍상수 감독님의 명성과 두터운 팬 층 그리고 완성도 덕분에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예술 영화들이 서울 위주로 상영하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의 경우 지방에서도 현재 상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찾아보면 <하하하>보다 더욱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 노우 유 노우>와 <우리 의사 선생님>입니다. 먼저, <우리 의사 선생님>은 '니시카와 미와'감독의 영화로 저번 주 4월 29일 개봉했습니다. 개봉 당시 이 영화의 상영관은 오리와 상암 CGV, 씨네코드 선재로 단 세 곳에 불과했는데 이마저도 이번 주부터 오리CGV가 막을 내리기로 결정하여 겨우 단 두 곳의 상영관에서 상영 중입니다. 그리고 <아이 노우 유 노우>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이 영화의 경우 이번 주 5월 4일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극장 단 한곳에서 개봉 중입니다.
어떤 분들은 서울 시내에는 스폰지 하우스 광화문, 아트하우스 모모와 같은 다양한 예술 영화 전용 상영관이 있으니, 이런 곳에서 예술 영화를 많이 틀어주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멀티플렉스 형태가 아닌 단관 또는 2관 정도만 가지고 있는 소규모 극장들이 대부분이고 장기 상영을 중심으로 영화를 개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차 상영을 한다고 해도 새로 개봉하는 예술 영화들의 수요를 맞춰주기엔 역부족입니다.
결국 이 시기에 예술 영화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대형 체인 극장들의 예술 영화 전용관 또는 블록버스터들이 쓰고 좀 남는 스크린이지만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CGV의 무비 꼴라쥬나 롯데시네마의 아르떼 관은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해서 소규모 예술 영화 극장과 같이 교차 상영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남는 스크린의 경우 예술 영화들에게 할당하면 좋으련만 블록버스터들이 4~5개 관 씩 붙잡고 놔주질 않기에 봄, 가을 비수기가 아니면 얻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교차 상영이라도 스크린을 얻어서 빛을 보면 다행이지만, 개봉 시기를 조율하다가 때를 놓치고 1년씩 묵혔다가 개봉하는 예술 영화들도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이렇게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가족의 사랑이 싹트는 5월은 어떻게 보면 예술 영화들에겐 춥고 힘든 시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술 영화 사랑하시는 분들은 이럴 때일수록 주변 사람들과 함께 우애도 쌓을 겸 해서 같이 예술 영화 한편 보러 가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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