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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악마를 보았나? 아니, 아쉬움을 보았다.영화 감상 2010. 8. 15. 08:36
줄거리: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약혼녀와의 결혼을 앞둔 국정원 요원 '수현'. 어느 날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니, 바로 자신의 약혼녀인 '주연'이 연쇄 살인마 '경철'에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주연'의 사망과 함께 분노와 자책감에 휩싸인 '수현'. 결국 그는 그녀의 복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하고자, 연쇄살인마 '경철'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감상:
<악마를 보았다>, 이 영화 굉장히 건조하다. 정말 보는 사람의 입 안을 바싹바싹 마르게 하고 목이 타게 만든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메마르는 가뭄과 같은 건조함이 아니라, 한 겨울 들판에서 서서 바람을 맞을 때 느끼는 그런 종류의 건조함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 매마르고 차갑고 매서운 그런 영화였다.
<악마를 보았다>는 수현의 약혼녀인 주연의 살해 장면과 함께 시작된다. 살인마인 경철이 주연을 망치로 내리쳐 기절시키고 자신의 아지트로 끌고가 살해하는 씬인데, 일반 고어 영화 속 장면들과 달리 말도 안 될 정도로 건조하다. 보통 고어 영화 아니 고어가 아니더라도 좀 잔인한 스릴러 영화를 떠올리게 되면, 사람을 살해하거나 누군가를 해치는 씬이 나올 때 화면을 가득히 매우는 피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뭐 피가 살인마의 옷에 튀든 아니면 화면에 튀든 말이다.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에서 생각보다 피를 찾아보는 건 힘들다. 물론 이건 사람을 찔러도 피가 안나온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고어 영화나 좀 잔인하다 싶은 스릴러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피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악마를 보았다>의 피가 나오지 않는 고어씬이 다른 일반적인 고어나 스릴러 영화에 비해 과장되지 않고 현실적이어서 더 소름끼치고 건조함이 느껴졌던 같다. 게다가 영화 속에선 두 주연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 장면이 많은데, 살인을 저지르고 난 경철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말끔하게 표현되어있다. 정말 영화 중반부까지 경철의 얼굴에서 피는 커녕 땀 한 방울조차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 속에서 건조함을 느끼게 한 건 두 배우의 연기였다. 이건 그들의 연기 열정이 없었다던가, 아니면 두 남자의 목숨을 건 대결이라는 구도에 맞지 않게 어설프게 연기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의 연기는 분명 강렬하긴했지만, 그 둘 모두 자신의 감정을 극한까지 밀어 붙여 막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과열된 상황이라도 그 둘은 어딘가 모르게 항상 어떠한 선을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선 비교적 이병헌의 드라이한 느낌의 연기에 주목하다보니, 최민식의 연기까지 같이 비슷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건조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마 그 모든건 바로 김지운 감독 의도된 연출때문이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몇 가지 요소들 이외에도 영화에는 내가 건조함을 느낄 수 있게한 아주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라 한다면 김지운 감독 특유의 미쟝센이 그것이었다. 영화 초반 나오는 경철의 아지트, 수현이 묵는 숙소를 비롯해 영화 중반 등장하는 기묘한 인테리어의 펜션까지 영화 속 배경은 극히 강박증적으로 정돈되고 간소화되고 패턴화가 되어있었다. 또한 영화의 색감도 굉장히 건조했는데, 특히 다소 어두우면서도 차가운 느낌의 색감은 간혹 어떤 장면에서는 시체 안치소를 떠올릴만큼 건조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리고 이렇게 의도적으로 연출된 건조함은 아주 특별했다. 다른 피가 잔뜩 튀기는 영화와 달리, 극한의 상황에도 흥분하지 않는 연출과 배우들 그리고 무서우리만치 잘 만들어진 배경 속에서 벌어지는 건조한 고어 장면. 그것은 추운 겨울 부는 바람에 삭삭 살이 베이는 느낌이었다. 다만 피는 나지 않고 아픔만 남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리고 특히 두 주연배우가 비닐 하우스에서 벌이는 격투씬은 계속된 건조함 속에서 나온 갑작스런 격렬함 때문이었을까? 다른 영화보다도 훨씬 더 긴장되고 격렬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악마를 보았다>의 연출은 익숙치 않았지만, 굉장히 특별한 느낌을 가진 영화였다. 하지만 그건 영화의 중반부까지였다. 영화는 후반부 야외 촬영 비중이 커지면서 점차 이런 특별함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세트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그 특유의 건조함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었던 추격씬이나 평범한 씬들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세트 촬영을 벗어난 이후부터는 <악마를 보았다>만의 그런 개성이 확 줄어든 느낌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에선 캐릭터들을 위해 배경을 영화에서 갈수록 지워나간다고 말 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중반부까지는 김지운 감독의 손이 닿아서 이것저것 <악마를 보았다> 고유의 느낌이 나는 것과 달리, 영화 후반부는 사실 다소 다른 느낌의 영화로 보여질 정도로 그 분위기나 여러가지 면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 많았다. 차라리 그냥 후반부에서도 그 특유의 날카롭고 매섭고 건조한 느낌을 살려서 계속 갔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악마를 보았다>에 아쉬운 점은 한 두가지 더 있다. 김지운 감독은 자신의 영화는 자신의 영화라며 다른 영화와 비교를 기피했지만, 사실 평론가들의 글이나 다른 리뷰에서도 볼 수 있듯 복수라는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에 비해 다소 철학적 사유가 부족해보였다는 점과 여성분들이 보면 다소 불편해 할만한 장면이 좀 많다는 점 정도다. 사실 뭐 전자의 경우 김지운 감독의 시나리오가 아닌지라 뭐 특별히 더 할 말은 없다해도, 후자인 여성 관객들이 불편해 할만한 장면이 좀 많다는 건 다소 아쉽다.
뭐 내용적으로 쓸데없이 야한게 들어갔다 이런건 아니지만, 그래도 딱 봤을 때 여성들이 불편을 느낄 장면들이 많기 때문에, 사실 "그런 부분을 편집했어야 한다" 뭐 이런 의견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딘가 여성 관객들에 대한 배려랄까...사실 흥행 차원에서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점에서 다소 조금만 덜 나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 <악마를 보았다>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잔인함으로 세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많은 이들에게 이 부분에 있어 다소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분명 <악마를 보았다>가 잔인한 건 사실이다. 물론 외국의 고어물이나 그런 것들과 비교해 비교적 수위는 약한 편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그 잔인함을 단순히 영화 흥행을 위해 사용했다거나, 관객들에게 쾌감을 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 알았으면 한다. 절대 일반 고어 영화들처럼 팔 다리를 잘라서 관객들에게 어떤 쾌감이나 웃음을 주려고 하는 싸구려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가 가진 잔인함에 대해 어떠한 편견을 갖기 전에 그것 하나만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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