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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명망있는 신문사 '데일리 센티넬'의 사장 제임슨 리드. 그는 어마어마한 대저택과 슈퍼카, 그리고 명망있는 신문사까지 갖춘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인생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외아들 브릿 리드(세스 로건)였다. 어머니 없이 냉정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브릿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철딱서니 없이 파티나 즐기며 사는 한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임슨 리드가 우연찮게 벌에 쏘여 벌침 알레르기로 인해 사망하게 되고...그 뒤는 아무런 준비없는 브릿 리드가 뒤를 잇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한량이었다. 어마어마한 재산과 언론 권력을 손에 쥔 그는 신문사를 경영할 생각은 커녕 어이없는 계획들을 세우게 되니, 바로 어렸을 적 우상인 슈퍼 히어로가 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직원이었던 만능 천재 케이토(주걸륜)의 도움을 받아 이 어이없는 계획을 실행하기에 이르는데...
감상: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갈 수록 실력을 의심받는 감독(대표적인 예로 바로 <그린호넷>의 미셸공드리...)이 차기작을 찍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대략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기존의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아예 기존의 스타일과 다른 영화를 찍는 것이다. 아마도 첫번째 방법이 정면 공격이라한다면 두번째 방법은 숨고르기 또는 쉬어가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린 호넷>의 감독 미셸 공드리에겐 최근 몇 년새 자주 따라붙는 평가가 있다. 바로 각본가 찰리 카우프먼과의 협업 없이 혼자서는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수작을 다시 한번 만들어내기는 힘들 것이란 평가였다. 너무나 뛰어난 초기작에 비해 후속작들은 기대에 못미치고 그 수준마저 나날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담감과 팬들의 기대 속에 지친 미셸 공드리가 선택한 길은 바로 숨고르기였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그린 호넷>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예상 밖이었다. 비교적 저예산으로 영화를 찍어오던 그가 갑작스레 편당 제작비 1억 달러가 넘는 블록버스터를 찍는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선택에 많은 팬들은 지금까지의 실망스러웠던 그의 필모그래피를 뒤로하고 그가 만들어낼 새로운 블록버스터의 세계에 큰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그린 호넷>은 미셸 공드리의 숨고르기 작품이 아니라 바로 숨 조이기 작품되버린 듯하다.
<그린 호넷>은 미셸 공드리의 특징이 반영되지도...그렇다고 기존 블록버스터들의 화끈함이 녹아있지도 않은 그냥 봐줄만한 몇 번의 기교를 빼면 아무것도 남는게 없는 평범한 팝콘 무비다. 화끈한 액션도 없고 그렇다고 최근 히어로 물의 대세인 주인공의 고뇌도 별로 없고... 남는건 시종일관 브릿 리드의 찌질함에 나오는 웃음 밖에 없다. 굳이 따지자면 히어로 물이라기보단 그냥 액션 코미디인데 거기에 히어로란 기믹을 끼워 맞춘 듯하다. 그나마 건질 거라곤 기존 히어로들과 달리 자진해서 악당인 척해서 히어로와 악당 중간에서 줄타기하는 컨셉 정도다.
게다가 주인공을 제외한 걸출한 두 조연 카메론 디아즈와 크리스토퍼 왈츠를 그야말로 쩌리 취급한건 감독의 가장 큰 실수다. 포스터에 주연 두 명 다음으로 바로 이름을 올린 카메론 디아즈는 왜 나왔나 싶을 정도로 거의 찬조 출연 급으로 활약했고...최종 보스 역할을 맡은 크리스토퍼 왈츠는 바스터즈의 그 악당이 어디 갔나 계속 생각 날 정도로 삼류 액션 영화의 악역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멍청해보이는 외양에 농담따먹기까지...크리스토퍼 왈츠의 눈빛 연기가 정말 아깝다.
물론 이 재앙을 모두 미셸 공드리의 탓이라 할 순 없다. 영화의 뼈대가 되는 각본엔 그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본은 이 영화의 주연이자 제작자인 세스 로건이 참여했는데...미셸 공드리가 이런 작품을 만드는데는 이 각본도 한 몫 했다. 개연성 없는 스토리, 주인공의 뜬금없는 각성, 강박증적으로 끼어든 말장난 유머까지...영화의 수준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감독이 많은 책임을 지게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그렇게 책임을 돌리기엔 각본의 완성도가 다소 낮아 보인다.
<그린 호넷>을 한마디로 정리해보자면 키덜트들의 가면놀이 장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종 일관 멍청해보이는 주인공 브릿은 그렇다쳐도 케이토마저 브릿과 애들마냥 투닥투닥거리고, 악당이라는 처드노프스키는 스파이 키드같은 어린이 영화에 나올법한 말장난이나 하고 있고...실제 영화 속 브릿의 모습처럼 <그린 호넷>이란 영화 자체도 돈 많은 키덜트가 만든 미성숙해보이는 작품으로 느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