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18세 고등학생 혜화는 우연치 않게 남자친구 한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둘은 아이를 낳고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부모들의 반대로 한수는 유학을 가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혜화의 아이는 태어난지 하루만에 목숨을 달리하게 된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어느날, 동물 병원에서 일하며 유기견을 돌보며 살아가는 혜화 앞에 한수가 나타나게 되고 그는 자신들의 아이가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는데...
감상:
이 영화의 제목 <혜화, 동>에서 '동'은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민용태 감독이 개봉 이후 수십 차례 진행해온 GV에서 밝혀온 바에 따르면 원래 동은 아이 동(童)의 의미였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상에서 '동'은 (혜화의) 아이란 뜻 뿐 아니라 영화의 배경인 겨울 동(冬), (혜화의 마음이 움직이는) 움직일 동(動) 등 영화 속 다양한 면모와 일치한다.
많은 '동'의 의미만큼 <혜화, 동>은 유기견, 청소년 임신, 남녀 간의 갈등, 입양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화, 동>은 그 많은 소재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한데 묶어 내는데 멋지게 성공한다. 특히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혜화와 한수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고찰은 영화의 깊이를 더해 준다.
사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번갈아 제시하는 <혜화, 동>의 이야기 구조는 많은 관객들에게 꽤 익숙한 편이고 영화의 주제마저 다소 무거운 편이다보니, <혜화, 동>은 자칫 잘못하면 지루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혜화, 동>은 이런 일반적인 예상들을 뛰어 넘는 놀라운 영화였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따뜻한 영화였다. 그건 두 가지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첫 번째는 반전과 더불어 스릴러적인 요소가 있어서이고, 두 번째는 바로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우선 스릴러적인 요소와 반전에 대해선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혜화, 동>은 드라마라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과하지 않을 정도로 적절하게 이런 요소들을 가미시켜 자칫 잘못하면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 구조에 긴장감과 더불어 생기를 불어넣었다.
다음으로 <혜화, 동>이 놀랍게 느껴지는데에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역할이 컸다. 특히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스타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은 유다인의 연기는 그 누구에 비할 바 없이 훌륭했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놀라운 감정이입을 보여주는 그녀의 표정, 몸짓, 음성 하나하나는 놀라움을 넘어 신비감마저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혜화, 동>이 배우에 크게 의존하는 영화가 아님에도, 다소 그렇게 느껴지는것은 아마도 당당하게 자신의 연기를 펼쳐나간 그녀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특히나 예년에 비해 꽤 굵직굵직한 독립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상황임에도 <혜화, 동>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 잘 걸어가고 있고 충분히 자신만의 빛깔을 내고 있는 영화라 생각된다. 사실 영화의 배경은 봄이지만, 오히려 따뜻한 봄 날에도 잘 어울리는 따뜻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